키 크는 비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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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는 비법(2)
  • 이성엽
  • 승인 201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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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를 키우려고 억지로 밥이며 과일을 잔뜩 먹은 탓인지 새벽에 눈을 떠 화장실에 갔어요. 볼일을 본 후 내 방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불이 꺼져 캄캄해야할 주방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엄마가 냉장고 문을 꼭 안 닫은 모양이네. 우리 엄마 건망증은 세계 최고라니까!’문을 닫으려 냉장고 쪽으로 갔을 때였어요. 냉장고 문이 반쯤 열려있고 냉장고 앞에는 기린 한 마리가 냉장고 안에 머리를 넣고 먹을 것을 찾으며 흥얼거리고 있었어요. 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소리를 지르진 않았어요. 그 녀석은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뚱뚱한 몸매에 짧은 팔다리, 기린인 걸 확인시키려는 듯 목만 엄청 긴 우스꽝스런 모습 때문인지 무섭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일단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무얼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어요.

자기 집 냉장고인양 서랍 칸에 있던 사과를 하나 꺼내 손에 들고, 야채실 문을 열어 당근 하나를 입에 물고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며 살펴보고 있는 기린의 등을 노크하듯이 툭툭 두드렸죠. 고개를 돌려 날 발견한 그 녀석은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당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그 녀석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뻔 했지만 억지로 꾹 참은 후 일부러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게 눈을 크게 뜨고 무서운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어요.

“너 누구야? 도대체 어디서 온 녀석이야?"
내가 쏘아붙이자 기린은 곧 울음이 터질 듯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어요.

“저기......연우야!”
어? 녀석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난 더 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죠.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나 모르겠어?”
기린은 몸을 휙 돌리더니 자기 등 뒤에 그려진 눈금을 보여 줬어요.160

“나 네 방에 사는 키 재기 기린이야. 여기 봐, 어제 네가 찍어 두고 간 점도 박혀있잖아.“

그 녀석은 분명 내방 벽에 붙어서 늘 내게 좌절감을 안겨주던 키 재기 기린이었어요. 등 뒤 눈금 밑에는 어지럽게 써둔 날짜들이 적혀있었고 분명 어제 아침 내가 표시해둔 점 까지 선명하게 박혀 있었어요.

“이 시간에 여기서 먹을 걸 찾고 있던 거야?”
기린은 대답 대신 긴 목 끝에 달린 머리를 끄덕끄덕 하고 있었어요.

“나 키 크려고 먹을 걸 찾고 있었어.”

“뭐라고? 네가 왜 키가 커야 하는데? 넌 키가 큰 기린이잖아! 가만히 있어도 천장만큼 키가 자랄걸?”
그러자 기린이 말했어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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