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계절을 사랑스러운 詩로 지어낸 꼬마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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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계절을 사랑스러운 詩로 지어낸 꼬마시인들
  • 박은영 교사
  • 승인 2016.12.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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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반 21명의 ‘밝음이’들 몇 개의 낱말 바꾸는 ‘시 바꿔 쓰기’ 하며 시 작성에 재미 붙여
흉내내는 말·대화글 등 응용하며 어휘력 쑥쑥 … 독특한 시적 표현으로 넓은 세상 그려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이라는 시다. 이 시를 보면서 우리 반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아이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는 예쁘고 사랑스러워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1학년 21명의 개구쟁이 밝음이들과의 일상이 내게는 풀꽃같다. 남아 16명, 여아 5명의 우리반 밝음이들.
이 풀꽃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발한 말 한 마디가 또 한번 웃음을 준다.
우리 학교 교실은 운동장보다 한참이나 높이 있다. 38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교실로 들어올 수 있다. 어른도 한 번에 올라오기 힘들 정도다. 우리반 모두 함께 운동장을 나가 달리기를 하려고 했던 날, 승권이는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무릎 아래 정강이를 긁혔다. 승권이는 보건실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날 승권이 일기장에는 이 글이 있었다.

오늘 운동장을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아팠다. 그런데 울지 않았다.
나는 남자인가 보다.

아팠지만 울지 않은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그런 승권이에게 ‘멋지다, 남자구나, 다컸네~’ 등의 격려를 해준 한마디가 결정적 싯구절이 되었다.
글쓰기는 똥누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던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반의 시쓰기는 ‘시 바꿔 쓰기’부터다. 함께 읽고 감상한 시의 뒷부분을 비슷한 내용으로 몇 개의 낱말만을 바꾸는 방법이다. 그런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으뜸일기글을 가지고 줄을 나누고 낱말을 생략해 보는 과정을 여러 번 해 본다. 그리고 싯구를 보고 낭송해 보았다.
교실에서 바라보는 앞산에 단풍이 들면 우리 학교 은행잎들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늘 자연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는 학교 뜰로 단풍놀이를 나간다. 노란 은행잎도 줍고, 냄새 나는 은행알을 피해 걸어도 보고, 달리기도 해 본다. 그리고 주말 과제를 내준다. 가족들과 우리 동네 단풍구경을 다녀오는 과제다. 예서와 병찬이는 그 과제에서 이런 글을 썼다.

구름(정예서)

필레 약수에서
빨간 단풍을 보다가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봤다.

너무 예뻐서
잡고 싶었다.

단풍잎만
두 장
주웠다.


단풍(정병찬)

울긋불긋한 가을산을 보니
가을을 파는
마법사가 다녀갔나 봐요.

나무도 바위도 빨갛게 노랗게
옷을 갈아 입었어요.
떨어지는 단풍잎이 아까워
얼른 주워 왔어요.

1학년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의 글은 자세하다. 1학년 일기 쓰기를 시작할 때, 학급 전체가 함께 겪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함께 글쓰기를 한다. 그리고 함께 읽기를 한다.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 보고 느낀 것을 쓴 모습이 사랑스럽다. 부모님께도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안내한다.
처음인데도 자기 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풀어놓는 아이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이야기를 으뜸일기로 뽑고, 함께 읽기를 많이 한다.
흉내내는 말을 공부하고 나면, 흉내내는 말을 넣어 쓴 일기글을 뽑고, 대화글을 공부한 뒤에는 대화글을 넣은 글을 뽑는다. 그리고 학급 통신에 넣어 어머니들에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이들의 글은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아주 조금씩 변화가 온다.
그러나 말은 줄줄줄 하더라도 막상 글쓰기를 해보라하면 쓰지는 못하고, 단순히 ‘∼했다, 재미있었다, 좋았다’라고 쓰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까지 봐주고 찾아주고 인정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똥누기가 될 때까지 하다 보면 누구나 시 한 줄 쓰고 읊을 줄 아는 꼬마 시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박은영<인제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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