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강원일보

 

 

우리 아빠는 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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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 가족이 함께 읽는 동화
작성자 : 조호재      2018-12-27
우리 아빠는 개그맨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그 어렵다는 방송국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셨다. 하지만 아빠의 영광은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열두 살이 된 지금 아빠의 TV 출연은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정도였다. 아마도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쌀국수집을 하는 엄마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엄마는 아빠를 대놓고 무시하곤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싱글벙글 집으로 들어오셨다.
“현동아! 아빠가 드디어…”
“드디어 뭐?”
“드디어 개파에 나간다!”
“개그 파티? 오! 그 대박 프로그램에 아빠가 나온다고?” 내가 깜짝 놀라는데 엄마는 대수롭게 물었다.
“이번엔 또 뭐야? 거지? 도둑놈?”
“좀비 3!”
“좀비 1도 아니고 2도 아니고 3?”
엄마는 왜 저렇게밖에 말씀을 못하시는 걸까. 가족이라면 아무리 못났어도 일단 감싸고부터 봐야 하는 건데 말이다.

개파가 방송되는 날. 우리 가족은 TV 앞에 모였다. 몇 개의 코너가 끝난 뒤 드디어 좀비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하고 봐서 그런지 아빠 옆에서 대본을 엿볼 때하곤 다르게 별 재미가 없었다. 끝나자마자 아빠가 물으셨다.
“어때?” 이런 상황에서 세상 어떤 아들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웃겼어요.”
“근데 왜 안 웃었어?” 아차! 억지로라도 웃었어야 하는 거였는데! 아빠는 곧바로 엄마한테 물으셨다.

“당신은 어땠어?”
“괜찮았어.”
“자세하게 얘기 좀 해봐. 뭐가 좋고 뭐가 나빴는지.” 그러자 엄마는 팔짱을 끼며 창밖을 내다보셨다. 난 침을 꼴깍 삼키며 엄마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괜찮았다니까. 진짜 재밌었어.” 다행히 엄마는 팔짱을 풀며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아빠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스쳐갔다.
그날 밤 난 개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아빠의 코너에 대해선 재미없었다는 글들만 수두룩했다. 실망한 채 나오려는 순간 충격적인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김호철씨 좀 빼주세요. 개파에 어울리지 않아요.
투덜이란 닉네임이 올린 글이었다. 감히 우리 아빠를 빼라니!… 그런데 다시 보니 투덜이뿐만이 아니었다.
-개파 질이 언제부터 이랬죠. 그 늙은 개그맨 정말 가관이더군요.
-김호철씨 때문에 못 보겠습니다.
-김 아무개만 뺐어도 그럭저럭 볼만 했을 듯…
아빠를 향한 악플들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떨리는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왜들 이러시죠? 오늘 개파에서 김호철씨가 가장 웃기던데요? 김호철씨! 힘내세요! 당신이 오늘 최고의 개그맨입니다! 그렇게 댓글 하나를 달아놓고 보니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가 김호철씨의 아들임을 밝히지 않은 것에 떳떳치 못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덜 웃겼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짓밟아대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달랑 이거 하난데?

다음 날 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개파 홈페이지부터 들어갔다. 어쩌면 어제하고는 다른 댓글들이 달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빠를 늙고 재미없는 개그맨이라고 놀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댓글에까지 악플 몇 개가 달려 있었다.
-파수꾼님! 안경 좀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수준을 좀 높이시든가!
-김호철이 웃겼다구요? 안드로메다에서 오셨음?
-파수꾼님 혹시 김호철 아들?ㅋㅋㅋ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아들인 걸 알고 단 댓글은 아닐 것이다. 이왕 시작된 싸움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저 시력 좋습니다. 당신보다 수준도 훨씬 높구요. 왜 남의 취향에까지 시비를 걸죠? 전 정말로 김호철씨가 가장 웃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들, 만약에 김호철씨가 이곳의 악플을 보면 기분이 어떨 거란 생각은 좀 해보셨나요? 그렇게 적은 후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지 하며 인터넷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뜻밖의 댓글 하나가 번쩍 눈에 띄었다.
-저도 김호철씨가 가장 웃기던데! 완전 팬이 돼 버렸다니까요! 닉네임은 돈벌레였다.
역시 아빠에게도 숨은 팬이 있었던 거다. 그 짧은 문장을 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댓글 하나를 달아놓았다.

-돈벌레님! 반갑습니다. 이제야 개그 좀 아시는 분을 만났네요.
한 주가 지나고 다시 개파가 방송되었다. 아빠의 좀비 연기는 지난번보다 많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는다는 게 역시 문제였다. 억지로라도 한 번 웃어야지 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깔깔거리는 게 아닌가. 한번 터진 엄마의 웃음보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고! 배야!…”
아빠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가득했다.
그날 밤 난 개파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를 것 같긴 했지만 혹시라도 또 악플들만 가득하다면 진짜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게 낫겠어.’ 그렇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이 개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를 듣고만 것이다.

“그 바보좀비 완전 유치해!” 우리 아빤 줄 모르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서운하고 분했다. 영영 우리 아빠가 김호철이라는 얘긴 하지 못할 것이다.
‘개그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어젯밤 배꼽이 빠질 지경으로 웃어대던 엄마가 떠올랐다. 당장 개파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분명 지난번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게에 계실 줄 알았던 엄마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어? 엄마, 안 나갔어?”
“시간 나서 잠깐 들렀어. 빵 좀 줄까?”
엄마는 간식을 챙겨주신다고 주방 쪽으로 가셨고, 난 가방을 내려놓다 문득 엄마가 미처 닫지 않은 인터넷 페이지를 보았다.
그것은 뜻밖에도 개파 홈페이지였다. 그리고 엄마가, 아니 돈벌레가 쓰다 만 댓글 몇 줄이 빙글빙글 춤을 추듯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김호철씨의 좀비 개그는 압권이더군요.
재미없다는 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도 제각각이라니! 전 앞으로 김호철씨 팬 카페라도 만들어야…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난 얼른 컴퓨터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엄마는 빵과 우유가 놓인 쟁반을 내 앞에 내려놓으신 후 아차 싶은 표정으로 황급히 컴퓨터를 끄셨다. 난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태연스럽게 빵을 베어 물었다.
조호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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